해외 연구기관 인턴십

*본 글에서는 등대지기와 OKUN 두 사람의 경험을 구분없이 일인칭 서술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번 편에서는 대학원 재학 혹은 졸업 후에 할 수 있는 인턴십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업과 유사하게 연구와 관련된 기관들도 인턴을 선발한다. 국방연구원, 통일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국가가 운영하는 국책연구기관이나(청년인턴) 아산정책연구원, 동아시아연구원 등 민간이 운영하는 민간연구소에서도 필요에 따라 대학원생 인턴을 선발한다(물론 TO가 많지 않고, 민간연구소의 경우 선발 계획이 알음알음으로만 전해지는 경우도 많다). 연구만 하는 대학원생들이 기업에 가는 것도 아닌데, 인턴십이 왜 필요할까?

연구기관 인턴십의 첫 번째 의미는 정책을 수립하는 혹은 이 수립과정을 보조하는 행위를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책연구기관 인턴십 과정에서는 정부에 보고되는 보고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집필되는지, 정보들은 어떻게 수집되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둘도 없는 기회를 얻게 된다. 두 번째 의미는 바로 그곳이 아니었다면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기관의 특성상 다양한 (비)공개 세미나들이 개최되고 다양한 연구기관에서 교류 세미나를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자리에 참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인턴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는 말자. 인턴은 인턴일 뿐!)

이러한 취지에 공감했던 나는 학부생 때부터 특정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를 희망했었다. 해당 인턴십은 무려 국내도 아닌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에 파견되어 연구를 수행하는 인턴십이었다(비행기 왕복 티켓, 생활비, 보험까지 제공). 학부생 시절에도 지원은 가능했지만, 제출서류 중 연구계획서가 있었기에 결국은 대학원에 들어와 학위논문 프로포절을 발표한 후에 인턴십에 지원하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협약을 맺은 연구기관 중 원하는 기관을 선택하여 지원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내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연구 분야를 선호하는 한 기관에 지원했다. 두 번 이상의 면접을 봤고 추가적인 라이팅 샘플까지 제출한 뒤,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라이팅 샘플은 필수 제출서류가 아니었는데 면접 과정에서 추가로 요청받아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왜 이 싱크탱크에 오고 싶니?

싱크탱크의 인턴/연구자 선발 인원은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경쟁률이 상당히 높다. 나는 토종 한국인으로 살아와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의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가 적합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연구를 하러 갔을 때 싱크탱크 인턴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인턴이 아이비리그 출신이었고, 인턴으로 채용되기 위해서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한다. 그렇게 채용된 인턴들이 나의 일을 보조해주고 연구에 대해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민망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Foreign Policy에서 발행된 “Washington Runs on Interns”라는 글을 읽어보면 인턴들이 어떻게 미국의 국제정치를 움직이는지 잘 알 수 있다). 면접 당시 이 인턴십 프로그램의 지원자는 주로 국제대학원 학생들이었고, 우리 학교 우리 과(일대원)의 합격자는 내가 두 번째였다.

싱크탱크에 인턴/연구자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 전략의 핵심은 리서치 핏(인턴이라면 관심사)이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어떻게 이 싱크탱크의 연구와 부합하는지 잘 설명하고 본인의 커리어(논문, 학회, RA 등)를 통해 주장한 바를 증명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싱크탱크에서 일하기 전, 두세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늘 가장 먼저 나왔던 질문은 왜 이 싱크탱크에 오고 싶은지였다. 각 싱크탱크마다 주요 관심 분야가 조금씩 다르고, 각기 특정 분야들에 강점이 있다. 인턴십 지원 당시 나는 이미 석사 프로포절을 끝냈었는데 내 연구와 딱 맞는 싱크탱크가 마침 있었다. 내 연구의 필요성, 연구 방법이 어떻게 해당 싱크탱크의 프로그램과 일치하는지 설명하고 이 연구에 맞는 연구자들과 그들의 저서, 그리고 방문학자들까지도 꼼꼼히 알아가 인터뷰에서 이를 어필했다(실제로 일하면서 그 연구자들에게 코멘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더 큰 행운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언어가 부족하더라도 ‘이 친구를 뽑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리서치 핏 외에는 없고, 부차적으로는 싱크탱크에 선발되어 어떻게 일할 것인지(태도),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사교성)를 잘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교수님, 해외에 나갔다와도 될까요…? (졸업은 어떻게 하고?)

나는 석사 3학기에 싱크탱크에 다녀왔는데 가장 큰 문제는 교수님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내 지도교수님은 연구를 항상 우선시하셔서 학교 밖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는데, 싱크탱크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는 교수님의 추천서가 당연히 필요했고 오피스에 찾아가 왜 여기에 다녀오고 싶은지 말씀을 드려야만 했다. 나의 ‘찐’ 목적은 물론 해외에서 놀기도 하고 새로운 것도 경험하고 싶어서였지만, 교수님을 설득하는 데에는 “사례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해온다”는 핑계가(실제로 자료를 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매우 유효했다. 감사히 교수님도 연구소의 프로젝트들과 내 연구가 많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싱크탱크 후보군 중 교수님과 합의해 내 연구에 맞는 연구소 한 곳만 지원하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연구기관을 2지망까지 지원할 수 있었는데 나는 1지망만 작성하고 불합격 시 다른 연구소는 파견되지 않겠다고 서명했고, 이것이 1지망 연구소에 더 강한 어필이 되기도 했다. (이 배수진 전략은 OKUN과 등대지기 모두에게 효과적이었다)

해외 연구기관에서의 삶

합격 후 해당 연구기관에 직접 파견되어 미국에서 수개월 간 근무를 했다. 근무하면서 물론 내가 좋아하는 연구 분야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었지만, 동시에 내가 아예 모르는 분야 혹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은 연구기관들은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는 동시에 이를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폭넓은 주제에 대한 빠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파트너 기관들과 함께 (비)공개 행사들을 기획해야 하므로 단순히 주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라는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마치 일반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행사를 보조하는 업무 내용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해외 인턴십이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일해본 경험을 쌓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내 연구기관 인턴십 또한 해외기관 못지않은 좋은 경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턴십은 또한 연구실 혹은 학교에서의 관계뿐 아니라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사회관계를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반 회사의 직장동료보다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관심사가 겹치기 더 쉬우니 대화도 잘 통하고 많은 도움과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위에서 해외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팁들을 간략히 언급했지만 근무하며 예상 밖이었던 부분도 짧게 작성해보자면, ‘세계 정치 1번지’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부 졸업반부터 해외 싱크탱크 보고서를 자주 읽고 포럼 영상을 종종 봐오면서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일을 하면서 깜짝 놀랐던 일례는 한반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연구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한국 기사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뽑는 인턴들을 보면 한국어 능력을 갖춘 대학생들을 선발하고, 매일 아침 한국 기사를 정리해 연구자들에게 전달하게 하곤 했다(북한 연구자임에도 노동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사실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Slack을 통해 돌아다니고, 기사 내용을 조금 바꿔서 그들이 세미나 발표를 진행하며 한반도 정세를 예측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가 생기기도 했다(물론 모든 연구소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며, 훌륭한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정책과 학문의 연계, 그리고 연구자의 삶, 보다 깊은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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