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흥망에 대한 고찰 –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의 시각을 중심으로

최형화

본편에서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파의 대표 인물 – 존 미어샤이머(John Joseph Mearsheimer)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의 2019년 논문 “Bound to Fail: The Rise and Fall of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논문의 취지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질서는 어떤 것일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글에서 미어샤이머는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지를 제시한다. 첫째, 현대 국가들은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고도 시기적절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질서’(order)가 필요하다. 둘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개의 국제질서를 이끌어왔다. 하나는 현실주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진영의 제한적 냉전 질서고, 다른 하나는 ‘자유성’(liberal)과 ‘국제성’(international)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 주도의 탈냉전 질서이다. 셋째, 탈냉전기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그 핵심정책의 결함 때문에 기필코 붕괴될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의도는 매우 어리석은 것인데, 이는 기타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유주의 질서가 특정 국가보다 국제기구에 특권을 부여하려는 경향은 주권 및 국가정체성과 같은 핵심 쟁점을 놓고 민족주의와 충돌한다. 

질서란 무엇이며, 이는 왜 중요한가?

미어샤이머가 정의하는 ‘질서’는 회원국들 간의 상호작용을 관리하는 국제제도(international institutions)로 조직된 그룹이다. 질서는 지역적 또는 세계적인 범위의 제도들로 구성될 수 있으며, 강대국들은 질서를 창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질서의 빌딩 블록인 국제제도 역시 강대국이 고안하고 따르기로 동의한 원칙인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현대 국제시스템에서 질서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대국들은 고도로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국가 간 관계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 간 상호 작용을 통제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제도와 규칙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질서는 강대국이 그들의 이익에 맞는 방식으로 약소국의 행동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은 다면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거래 비용을 낮추고, 국가 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규칙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국제질서의 몇 가지 유형

미어샤이머는 국제시스템을 구성하는 질서를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한다. 첫째, 국제질서와 유계(bounded)질서이다. 국제질서는 세계의 모든 강대국을 포함하지만, 유계질서는 제한된 제도 내에서 회원국 자격을 가진 국가들로만 구성된다. 이 두 가지 질서는 모두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며, 현실주의적 국제질서만이 유계질서를 동반할 수 있다. 둘째, 현실주의(realist), 불가지론(agnostic) 또는 이데올로기(ideological)에 의한 질서이다. 더 세부적으로 국제시스템이 양극인지, 다극인지 아니면 단극인지에 따라서 이 세 가지 요소의 중요성이 달라진다. 단극시스템에서는 패권국의 정치적 이념이 어떤 국제질서를 형성하는지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양극시스템 혹은 다극시스템에서 패권국의 정치적 이념은 무의미한 것이다. 셋째, 질서가 회원국의 주요 경제 및 군사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따라, 폭과 깊이 두 가지 차원에서 두꺼운(thick) 질서와 얇은(thin) 질서로 구분한다. 두꺼운 질서는 경제 및 군사 영역 모두에서 국가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로 구성된다. 반면에 얇은 질서는 경제 혹은 군사 두 영역 중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거나, 두 영역을 모두 다루지만 얕은 영향을 미치는 제도로 구성되거나, 두 영역 중 한 가지 영역에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시스템을 구성하는 질서 3가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흥망성쇠

미어샤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크게 냉전기 질서와 탈냉전기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구분한다. 미어샤이머가 일컫는 냉전기 질서는 양극체제의 얇은 질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이 주도했던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Pact)는 모두 유계질서였다는 점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한편 탈냉전기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냉전기의 현실주의 유계질서가 미국에 의해 변형된 질서로서 자유주의적 제도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민주평화론이 추구하는 가치에 의해 구축되었다.

미어샤이머는 이윽고 1990년부터 2004년까지를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황금기로, 2005년부터 2019년을 국제질서의 내리막길로 평가한다. 미어샤이머는 2005년부터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주장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미국은 다른 정치이념의 국가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개별 국가들의 민족주의 정서를 제대로 자극하였고, 심각한 경우 국부적인 전쟁도 촉발한 바 있다.(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침공 등) 둘째,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내부에 주권과 국가정체성에 관련한 정치문제를 야기했다. 국가의 주권과 국제제도에서 한 가지 가치에 치중되기를 강요 받은 국가들은 내부에서 치열한 정치적 설전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인권과 관련된 문제는 회원국 간에도 균열을 발생시켰다. 셋째,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많은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초세계화로 인해 중국이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였고, 러시아도 부활하였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는 점점 약화되었다.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미래는?

미어샤이머는 미국 외교정책결정자들이 하루빨리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최종적으로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현실주의에 의한 국제질서를 재건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렇다면 미국 주도의 신흥 국제질서는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미어샤이머의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권 교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강제로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둘째, 미국은 신흥 국제질서 구축을 위한 경제제도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력은 곧 군사력의 근간이므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제도가 세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책결정자들은 중국의 팽창을 억제할 수 있는 유계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특히 중러동맹 관계로부터 러시아를 떼어내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필자의 논평

주지하다시피 미어샤이머의 학문적 아이덴티티는 ‘공격적 현실주의자’(offensive realist)이다. 본편에서 다룬 그의 논문은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분석틀인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우리는 이 글이 발표된 시점이 2019년이라는 점에 다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2019년 이후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일련의 굵직한 이슈들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첫째,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된 바 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지정학적 변화로 규정해야 할지, 아니면 일시적 혼란 사태에 불과한 해프닝으로 인지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질서는 어떤 모습일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팬데믹 사태로 인해 미어샤이머가 글에서 제기했던 현실주의에 기반한 신흥 국제질서보다는 경제, 보건, 정보, 과학기술 등 비전통 안보분야에서의 다자협력을 촉진하는 국제질서의 구축이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과연 미어샤이머의 이론적 적실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둘째,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질서를 부정하였고, 2021년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선언하여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질서를 옹호하였다. 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패권국의 국제질서 슬로건은 집권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며, 패권국의 국내정치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미국의 국내정치에서 비롯된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분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일각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셋째, 미어샤이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주장하면서, 나토에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고 러시아 국경을 서방 요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미국정부의 집착이 결정적으로 전쟁을 촉발시켰다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미어샤이머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쇠퇴 중이고 지역의 패권국으로 될 가망성도 없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러시아의 쇠퇴는 오히려 중국의 부상을 가속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하여 미국의 패권질서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할 수도 있지 않는가? 

앞으로 국제질서의 행태를 결정 짓는 관건적인 요소가 무엇이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직 강대국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미어샤이머의 시각을 통해 모든 국제정치 현상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해당 분석틀로 일부 현상을 적실성 있게 해석하는 연습은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지적 훈련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이 글에 접근한다면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참고문헌

Mearsheimer, J. (2019). Bound to Fail: The Rise and Fall of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 International Security, 43(4),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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