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이번 국제정치를 읽는 시간에서 소개할 논문은 ‘Hierarchy, revisionism, and subordinate actors: The TPNW and the subversion of the nuclear order’이다. 한국어로 논문 제목을 직역하자면 ‘위계, 현상변경, 약소국: 핵무기금지조약과 핵 질서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의 두 저자 중 Naomi Egel은 스탠포드에서 포닥으로 활동하고 있고, Steven Ward 교수는 케임브리지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EJIR(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에 실린 이 논문은 “왜 약소국들은 현상유지에 왜/어떻게 도전하느냐?“라는 꽤나 도발적인 질문으로 초록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있기에 짧게나마 논문을 다뤄보겠다.
강대국 국제정치에 대한 재고찰
현상 변경은 국제정치학에서 대표되는 주제로 ‘왜/어떻게 국가들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는지’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강대국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현상변경이라는 학계의 개념이 주로 무정부 상태에 기반한 현실주의 가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현상변경은 오로지 경제적/군사적 능력을 가진 국가만이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TPNW(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라는 특이한 사례를 통해 약소국의 현상변경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지금까지 TPNW라는 사례는 약소국이 핵 헤게모니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핵보유에 대한 규범적 가치의 변화로 주로 다루었다면, 본 논문은 위계와 현상 변경에 대한 넓은 시각을 제공한다.
국가들이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방식에 대해 지금까지 기존 연구들은 상대적 권력이라는 단일 변수에 관심을 가져왔다. 케네스 왈츠와 미어샤이머의 주장처럼 무정부 상태는 국가들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변화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물질적 권력(material power)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약소국의 현상변경을 논하기 위해 본 저자는 무정부상태와는 다른 위계라는 틀을 제시한다. 최근 국제정치학 논문들은 무정부 상태라는 조직원리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위계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간략하게 위계성은 주권의 평등이라는 주장에 반하여, 행위자들을 추동하는 상위 국가와 하위 국가의 일련의 구조를 말한다. 이와 같은 위계성의 연구는 세계 질서를 폭넓게 이해시키고 대외정책을 표방/억제하는 요인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위계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작업을 통해 길게 다루도록 하겠다.
현상변경 분류하기
국가 행위자는 특권의 배분(distribution of privileges)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비대칭 동맹 관계는 후견 국가의 안보 신뢰 신뢰성, 국내 정치의 반대로부터 기인하는 불만족, 높은 방위비 분담금 등에 대해 불만을 야기할 수 있는데, 국가는 현상변경을 통해 불만족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유의할 점이 있다면 현상변경은 재협상(renegotiation)과는 다르다 재협상은 피상적이고 흔히 일어나지만, 현상변경과 같이 큰 변화를 야기하지 않는다. 이 재협상도 쉽지 않은데, 약소국이 이미 공고화된 위계 질서를 변화시킬 레버리지가 없다면, 이 질서에서 강대국은 약소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와 더불어, 위계 질서는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재협상은 약소국으로 하여금 높은 비용과 위험을 수반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강대국은 기존 질서의 변화가 이 위계를 구성하는 담론과 관습과 연관될 때 그들의 우위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재협상을 선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재협상이 실패할 경우, 국가들은 현상변경을 시도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 현상변경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위계 질서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타겟팅한다. 첫 번째 형태는 positional revisionism으로 명명하고, 관련 영역의 자본(distribution of field-relevant capital)에 집중한다. 쉽게 말해서 물질력을 투입해, 기존 위계 질서에서 그 국가의 지위를 증진시키려는 방식으로, 기존의 강대국에게 양보를 이끌어낸다. 흔히 신흥 강대국이 대표적인 군사적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형태는 기존 질서의 위계를 형성하는 사고 및 담론과 같은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subversive revisionism이라고 표현한다. 이 접근 방식은 기존의 지위와 특권을 부여하는 특징, 규범을 구성하는 개념들을 대체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위의 상징을 낙인찍는 것(stigmatize)이다. 주로 그들은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규범, 관습 등을 내포하는 기존 제도나 조직에서 탈퇴하거나 현상유지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대체 조직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다만 이러한 현상변경 시도는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강대국이 현상변경을 수용할 강제적 레버리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Subversive revisionist project는 약소국 혼자서 행할 수 없고,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like-minded actor)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많은 목소리가 없다면, 특정 관례나 행동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계층화된 위계질서에서 약소국들은 현상변경의 첫 번째 형태와 같이 기존 질서의 지위를 상승시켜 기존 강대국에 도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위계를 구성하는 담론을 악화시키거나 전복하기를 시도하게 되는데 두 가지 조건(이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방식들이 실패할 때, subversive challenges를 촉진하는 사회/정치적 자원들이 이용 가능할 때) 이 갖춰질 때 현상변경을 추진할 수 있다.
핵무기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물론 TPNW가 기존 핵보유 국가들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에는 불가능했지만, positional revisionism을 추구하기 위한 material capacity가 부족한 약소국들의 subversive revisionism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핵 문제는 전형적인 국제정치의 위계성을 드러내는 사안이다. UNSC의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5개 국가들은 핵무기로 인해(distribution of privileges)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여 질서 내에 불평등을 형성한다.
따라서 TPNW는 불평등한 핵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핵 보유의 정당화를 무너뜨리는 노력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Positional revisionism과 같은 현상변경은 핵을 보유하지 않은 약소국들이 물질적 한계로 인해서 시도할 수 없어, 핵보유국가들의 권위와 정당화를 도전한다. 구체적으로 핵 비보유국가들은 현 제도의 현상유지를 반대하고, 핵 보유국가들을 더 이상지지 하지 않으며, 안보와 억제의 도구로써 핵 무기의 주요 담론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기를 시도했다. 다만 확장억제를 통한 지역 안정을 위한 핵무기 정당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TPNW가 실현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TPNW를 지지한 약소국은 사회적/정치적 자원을 이용해 지지구조를 형성했는데, 인도주의적 차원의 논의에서 핵무기 사용을 낙인을 찍는 전략을 구사했다. 처음에 지뢰/화약과 같은 무기 사용 금지를 인도적 차원의 논의하는데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강도가 더 높은 핵무기의 사용을 지위/위신/지배의 상징에서 부끄러움과 열등함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이 논문은 참가국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핵 위계질서를 생산하는 규범들을 무너뜨리는 현상변경의 담론을 추적했다. TPNW에서 나온 구체적인 내용들은 논문을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결론
간략하게 글을 요약하면, 본 논문은 현상변경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신흥 강대국(positional revisionism) 뿐만 아니라, 약소국를 포함한 많은 국가 행위자가 성공 유/무와 상관없이 현상변경(subversive revisionism)을 시도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약소국은 위계 상태을 정당화하는 규범과 담론 등에 대항한다. 이 논문은 TPNW라는 사례를 통해 국제정치학에서 고정화된 무정부상태를 넘어 위계에 대한 구체적인 기존 연구와 함께 현상변경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했다는 점, 이 현상변경을 통해 연계되어있는 위계의 배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에 제약을 받은 약소국의 외교정책(agency)를 주목했다는 부분에서 큰 함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Egel, N., & Ward, S. (2022). Hierarchy, revisionism, and subordinate actors: The TPNW and the subversion of the nuclear order.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0(0). https://doi.org/10.1177/135406612211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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