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
함께 읽을 글 | 전재성(2016). “알렉산더 웬트(Alexander Wendt)의 양자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국제정치논총, 56(2), 7-43.
얼마 전 들었던 세미나에서 박홍서(2011). “월츠가 아인슈타인을 만날 때: 상대성이론을 통한 신현실주의 이론의 재해석”이라는 논문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발표자는 이 논문을 “혼란의 시발점”이라고 불렀습니다. 논문 제목만 보고도 여러분들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떠올랐어요.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하여튼 n년 전 남궁곤(2008). “웬트가 양자로 간 까닭은?: STIP(1999) 이후 구성주의 방법론 이행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제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뭐요..? 어딜..? 누가 양자로 간다구요..?) 그러니까 도대체 웬트는 왜, 그리고 어떻게 양자로 갔다는 걸까요? 오늘의 글은 웬트의 양자사회과학을 다룹니다.
웬트, 관념, 구성주의
웬트의 구성주의는 신현실주의와 세계체제론 모두를 비판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웬트에게 있어 신현실주의는 존재론적 개체주의로 반환원주의를 표방한 환원주의이고, 세계체제론은 세계체제의 구조 자체를 물신화한 전체주의 같은 겁니다. 웬트는 이들 환원주의와 물신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써 구성주의를 주창했죠. 비가시적인 구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험주의적 과학관에 정면으로 도전한 과학적 실재론, 그리고 주체와 구조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구성을 가정한 구조화 이론에 기초한 웬트의 구성주의는 사회적 구조상의 조직원리와 구조 내적인 요건을 모두 포괄합니다.
웬트는 인간사회의 구조를 결정하는 ‘공유된 관념’에 주목하며, 이러한 공유된 관념에 의해 목적을 가진 행위자들의 ‘정체성’과 ‘이익’이 구성된다고 봅니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국제체제의 ‘무정부성’ 역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 사회적 구조에 해당하며, 무정부상태를 구성하는 국가는 의도와 합리성, 이익과 같은 인간의 특성을 갖춘 행위자로 간주되죠. 더불어 국가의 행동은 문화와 규범을 통해 설명될 수 있으며, 국가이익은 외생적이기보다는 내생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고요. 신현실주의가 말하는 국제체제와 국가의 개념에 수정을 가하고, 물질주의적 요소를 비판한 구성주의는 국제정치에서 ‘정체성’과 같은 관념적 요소들을 재조명한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웬트와 양자의 만남
그러나 웬트는 2015년에 이르러 『양자적 마음과 사회과학(Quantum Mind and Social Science)』을 발표하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됩니다. 구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래로 웬트의 이론은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웬트는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과학철학의 논의를 원용해 구성주의를 이론화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양자물리학’에서 발전된 논의를 동원하여 ‘양자사회과학’이라는 기획을 내놓습니다. 구성주의가 가진 존재론의 문제를 해소하고 심신 문제를 재해석하기 위해 양자론을 끌어온 웬트의 접근은 자연과학주의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양자물리학은 고전물리학의 여러 주요 가정들(물질주의, 원자론, 결정론, 역학, 절대적 시공간 개념, 주체-객체의 구분)을 붕괴시켰고, 입자-파동 이원론,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의 비국소성과 분리불가능성, 상보성의 원리, 시간적 인과의 가역성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원리들을 제기했다고 합니다(제가 이걸 다 이해하고 쓰는 건 아녜요). 웬트는 특히 파동과 입자의 이원론과 불확정성의 원리로 물질주의를 탈피하고, 파동함수의 붕괴로부터 인간의 의식 경험과의 유사성을 발견해냈다고 해요. 양자현상의 측정문제와 얽혀있는 입자 간의 중첩성, 즉 비국소성으로부터는 ‘사회과학이 주체와 객체를 구별된 것으로 전제할 수 없으며 사회 현상은 중첩적인 상호작용’이라는 논리를 도출합니다. 웬트는 이러한 양자적 접근을 통해 데카르트식의 심신 이원론과 복잡계의 창발론을 모두 비판했습니다.
존재의 위계성을 설정하지 않는, 양자적으로 평평한 존재론을 주장하는 웬트는 양자세계의 존재론이 인간과 사회라는 거시 세계와도 일관된다고 설명하면서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설명하는 데에 양자 뇌 이론을 원용합니다. 웬트는 인간의 뇌가 양자의 존재와 움직임을 설명하는 파동함수처럼 작동한다는 견해를 수용하여 인간의 의식은 항상 ‘구성될 준비상태’를 유지하다가 매 순간 객체와 접촉하면서 무수한 ‘구성의 순간’을 맞이한다고 이해해요. 이는 ‘평평한 존재론’ 위에서 ‘인간의 의식이 구성된다’는 존재론적 기반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죠.
또한 웬트는 미시세계의 특징이 거시세계에서도 유사하게 발현하는 부분에 집중해 양자적 미시세계의 양자 얽힘, (시공간적) 비국소성, 분리불가능성, 불확정성, 중첩적 존재성, 확률적 인과론, 역인과성 등이 거시 세계에도 나타난다고 봅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웬트는 각 사람이 하나의 양자체계로 파동함수적 의식을 갖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의 소통(언어의 공유)은 두 사람의 파동함수가 붕괴하는 동시에 얽힘 현상을 보이며 하나의 양자체계를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과학적’ 사회과학
정리하면 웬트의 양자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사회구조’는 물리적으로 공유된 정신상태, 즉 사회적 파동함수의 중첩상태입니다. 이는 사회구조는 실재하지만 관찰될 수 없고, 개별 행위자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공유된 정신상태의 중첩으로 상호 창발하며 또한 총체론적인 사회존재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죠. 동일 선상에서 국가 역시 ‘한편으로는 특정한 형태의 언어, 시민권, 영토성, 주권 등에 기초해 조직된 사회구조에 의해 구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언어 행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실천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고요. 따라서 국가는 사회구조로 ‘상존하는 실재태’가 아니라 ‘가능태로서의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웬트가 자연과학에서의 양자물리학을 기초로 삼아 양자사회과학을 논하게 된 것은 단순히 국제정치에 한정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고자 했기 때문일 겁니다. 웬트는 ‘사회과학’ 자체를 새롭게 규정하고 싶었던 것이죠. 동시에 웬트는 사회과학이 전통적 접근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여전히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는 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양자물리학이 고전물리학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든 것처럼, 웬트의 양자사회과학 논의는 사회와 인간 자체에 대한 세계관을 뒤바꿀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예고한 것일지 모릅니다.
웬트는 스스로 국가중심주의에 기초했다고 비판한, 존재론적으로는 개체주의와 구조주의 간 절충적 결합의 산물이었던 구성주의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자 했습니다. 국제정치의 영역이 요구하는 국가 혹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가 열어젖힌 세계에서 앞으로 어떠한 논의가 펼쳐질 수 있을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양자사회과학, 양자국제정치학은 정말로 존재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국가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웬트의 양자적 접근에 기대어 웬트의 양자사회과학을 해석하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여기 이 웬트의 도전(?)에서 저는 지식과 과학, 더 거창하게는 진리에의 탐구가 무엇을 목표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쓸모없음으로 쓸모를 얻는 예술조차도 화폐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학문은 무엇을 향해야 하고, 또 무엇을 향할 수 있을까요. 탐색과 기술을 넘어서, 설명과 예측을 응당 해내기를 요구받는 과학에서 진리는 유용함을 앞설 수 있을까요? 애초에 진리 따위는 없다거나, 혹은 인간이 ‘도달 가능한’ 진리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면 매 순간 가능태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구성적’인 앎은 우리에게 무엇을 지시하는가, 고민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Key Readings
- Wendt, Alexander. 1987. “The agent-structure problem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International Organization, 41:3, 335-370.
- Wendt, Alexander. 1999.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Wendt, Alexander. 2015. Quantum Mind and Social Science: Unifying Physical and Social Ont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참고문헌
전재성(2016). “알렉산더 웬트(Alexander Wendt)의 양자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국제정치논총, 56(2),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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