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
함께 읽을 글 |
- 박민식. “”러시아군에 거세당했다” 풀려난 우크라이나 포로 증언,” (한국일보, 2023. 06. 20.)
- Sanjukta Nath(2022). “Examining Militarized Masculinity, Violence and Conflict: Male Survivors of Torture,” International Studies, 59(1).
지난 2023년 6월 18일 영국의 주간지 선데이타임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억류됐다 포로 교환으로 풀려난 우크라이나군의 정신과적 치료를 담당하는 전문 심리상담사와의 인터뷰를 공개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심리상담사 안젤리카 야첸코는 러시아에 억류됐던 우크라이나 군인이 술 취한 러시아군으로부터 ‘거세’를 당했음을 털어놓았죠.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일보를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피해 군인의 진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피해자들을 심하게 구타한 뒤, “네가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하겠다”면서 칼로 피해자들을 거세했다고 합니다. 한 피해자는 “당시 피가 너무 많이 나와 죽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네요. 야첸코는 “이들의 존엄성은 너무 심하게 훼손됐다”면서, “비단 신체뿐 아니라 그들은 막 성생활을 시작한 젊은 남성으로,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여전히 성적 욕구 등은 느끼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습니다. 더 나아가 야첸코는 “피해 군인들이 ‘러시아군인들은 방법을 아는 듯 아주 능숙하게 거세했다’고 말했고, 저도 군인들을 치료하는 동료에게서 많은 사례를 전해 들었다”면서 거세당한 포로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한국일보에서 전하고 있듯 러시아군이 포로로 잡은 우크라이나군을 거세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7월에도 러시아군이 포로로 잡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거세하는 영상이 유포돼 논란이 일었죠. 거꾸로 우크라이나 쪽에서도 러시아군을 거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가, 비난이 거세지며 발언의 당사자가 ‘그저 (화난) 감정이었다’며 해명과 사과를 표명한 일도 있었습니다. 거세라니.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이 대명천지에 아무리 전쟁 중인 적이라고 한들 거세라니, 이게 웬 말이냐 싶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 거세는 여전히, 여러 분쟁 지역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력과 고문의 한 형태입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도덕과 윤리에 기반한 사고를 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대체 왜 포로로 잡은 적들에게 거세 따위를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을 겁니다. (전쟁에 윤리 도덕이 어디 있냐, 상식 같은 건 통하지 않는 게 당연한 법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양차 대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으로부터 우리가 한 치도 배우지 못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대체 왜 거세를 할까요? 전투 복귀를 주장하는 28살 군인의 사례처럼, 거세는 ‘완전한’ 전투력 손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데요. 거세는 어떻게, 공격이자 무기가 되는 것일까요?
Nath(2022)는 분쟁과 갈등 과정에서 고문을 겪은 남성 생존자들을 연구했습니다. Nath는 이 연구에서 군사화된 남성성, 폭력, 그리고 갈등에 대한 검토를 수행했는데요. 구금 시설이나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남성 대상 성폭력은 그 폭력의 형태가 실로 다양합니다. (차마 글로 옮기고 싶지 않은) 여러 방식의 강간부터 강제 성행위, 거세, 성기 구타 및 생식기에 대한 기타 폭력까지 발생하곤 합니다. 대체 왜? 왜일까요?
분쟁 중 일어나는 남성에 대한 성폭력의 목적은 적 자체를 거세(파괴)하는 것부터 동성애화(를 한다고 비동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 혹은 동성애 행위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재생산 방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적으로 적을 ‘거세’하거나 ‘여성화’하겠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거세된(불완전한) 남성’, ‘동성애자 남성’, ‘여성과 다름없는 남성’을 향한 사회의 ‘낙인’이 남성 생존자들이 피해를 입고도 이를 신고하거나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분쟁·갈등 지역이 동성애를 범죄로 인식하는 정도 혹은 비율이 높을수록 이 재갈 효과는 극대화 되죠. 전통적인 남성성-여성성의 젠더 각본에 따르면 ‘진짜 남자’는 강간 당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남성들은 자신이 입은 성적 피해를 고발할 수 없게 됩니다. 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쪽에서도 남성들이 입는 성폭력 피해는 그 피해의 성적인 성격을 간과한 채 단지 ‘고문’으로만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줄곧 지적해온 바와 같이 남성성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닙니다. ‘남성성’은 남자들을 남성적이고 이성애적인 존재로 구성하는 젠더의 사회적 실천이며, 이는 나약하거나 동성애적인 남성, 또는 여성들과 ‘반대항’에 있는 것으로 정의되죠(Vojdik, 2014). 이는 남성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생산하고, 남성들이 (여성에게 빈발한다고 가정되는) 성폭력-젠더 기반 폭력의 피해자로 간주되지 못하도록 이끕니다. 물리적이고 영구적인 손상을 초래하는 거세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여러 수단으로써 각종 형태의 남성 대상 성폭력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남성성의 사회가 만들어낸 이 ‘취약한’ 남성들은 피해를 말할 언어조차도 사실은 갖지 못한 겁니다.
참고문헌
Sanjukta Nath(2022). “Examining Militarized Masculinity, Violence and Conflict: Male Survivors of Torture,” International Studies,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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