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경
정치학도라면 한 번쯤 들어본 직한 질문은 정치인되려고 정치학도가 되었냐는 것일 것이다. 사회과학의 분과로서 정치학은 사회현실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한 인과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본 질문은 다분히 엉뚱한 질문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다만,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Relations)을 전공한다고 밝힌다면 다소간 부담을 느끼지만 전공에 부합하는 질문을 듣게 될 수도 있다. 가령,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왜 갈등국면으로 접어들었는지, 두 국가 간 협력은 불가능 한 것인지, 미국은 왜 중국과 탈동조화(de-coupling)를 하려는지, 그럼에도 미국은 왜 위험관리(de-risking) 주장하며 중국과 대화를 원하는지 등의 질문들이다.
앞선 질문들은 국제정치학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들이기도한데, ‘미국과 중국은 왜 갈등을 하는지’의 질문은 기존 패권국가에 도전하는 신흥패권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 내지 패권 갈등은 왜 발생하는지, 왜 두 국가 간에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지의 질문과도 부합한다. 이번 국.정.시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에 대해 새롭게 해석을 시도한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의 2022년 저서 Danger Zone (번역: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국제정치학도로서 작금의 미-중간의 이슈에 대한 배경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첫번째 국.정.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이퍼링크를 누르시면 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은 기존패권국과 신흥패권국 간의 갈등을 설명하는 주된 해석틀이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의 저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서 그리스 스파르타와 에테네 두 국가 간의 전쟁 원인을 분석하였다. 기존패권국 스파르타는 신흥패권국 아테네의 부상에 대해 두려움 내지 공포를 느끼고, 신흥패권국은 자신들의 부상을 근거로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에 대해 상대적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서 두 국가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두 국가의 충돌을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두려움을 통해서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Danger Zone>의 저자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국가가 기존패권국이 아닌 신흥패권국에 있기 때문에 미-중 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이를 성장기의 정점을 지난 신흥패권국가 겪을 수 있는 두려움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레닌의 함정은 경제적 성장기를 지나고 둔화세에 접어들은 신흥패권국은 패권 경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그동안 경제성장기에 축적해온 역량을 바탕으로 현상을 변경하기 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분석과 같이 동구권의 몰락 이후 세계 안보 정세에서 중국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였다. 15억 인구를 바탕으로 20년 가까이 연 10% 내외의 경제 성장을 보이며 중국은 세계 정치, 경제, 안보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부상이 세계 및 지역 안보와 평화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일명 중국위협론이다. 경제적 관점에서의 중국위협론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규모를 곧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을 비롯한 골드만삭스와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경제분석 기관들은 중국이 2030년경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중국의 달라진 경제적 위상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 및 우방국인 유럽의 최근 對중국 인식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승하여 왔다. 하지만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미-중 경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중국 경제와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이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를 개별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고, 유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는 흑백논리가 되어서는 안되므로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닌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de-risking)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경제적 대국이 된 중국의 위협은 안보에까지 미치고 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무력 시위의 빈도와 강도가 2년 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무력 시위는 잦아지고 있으며, 강도 또한 질적으로 다른 수준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기존 국제 질서를 변경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국은 러시아와 이란과 연대하여 에너지 공급망의 변화를 통해 페트로달러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외교무대에서 중국은 책임 대국을 자처하며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냈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중재를 자처하고 있다. 금년 3월에 발표한 ‘세계 문명 구상 (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GCI)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윤곽을 보여주었다는 분석과 함께 중국이 국제 질서 변화를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요약하면 중국은 미국 패권의 근간인 기축통화, 국제적 리더십, 문명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랜즈와 베클리는 이러한 중국의 도전에 맞서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군사도발을 방지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우호세력을 결집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고립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중국의 군사도발 방지를 위하여 미국은 현재 필리핀과 군사 협력의 수준을 한층 더 격상시켰고, 대만 해협에서의 중국의 무력시위에 대해 고강도의 대응 조치를 취할 의도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한-미-일의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함으로써 단기적으로 중국의 군사도발에 대응하려는 계획이다. 동시에 미국은 화웨이, ZTE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으로 지정하여 기술 패권 경쟁을 벌임과 동시에,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며 경제 영역에서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QUAD, AUKUS와 같이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like-minded) 역내 국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추진하며 장기적으로 중국의 도전에 대한 준비를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맹국 및 우호국가들에 대한 관리는 중국의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더욱 그 필요성이 증대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세력 규합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미국의 인도태평양 대전략의 핵심축인 인도는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국가가 실상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유럽 역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여 미국 중심의 정책에 동참할 것을 주저하고있다.
중국의 전망 또한 낙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인구 정체로 인한 노동 인구 감소, 코로나 여파로 인한 경제 둔화, 국내 인권 문제 같은 정치체제의 불안정은 중국이 고도성장기의 정점이 지나고 하락세에 놓인 것을 방증한다. 이를 방증하듯 2030년에 미국의 국내총생산(GDP)를 따라잡을 것이라 예상했던 앞선 전망과는 달리 최근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최소 2040년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중국의 GDP의 둔화세는 타 국가의 수치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 GDP의 63%는 국유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안정성에 있다. 즉, 중국의 GDP는 중국의 고용지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의 GDP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은 중국의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중국 청년층(16~24세)의 실업률은 2022년 시진핑 3연임 시기에 16%였지만 2023년 여름 기준 20%에 육박하였고, 앞으로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이 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 당시와 매우 흡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위기 당시, 청년층의 실업률 증가가 정치적 불만으로 이어져 미국 정치의 양극화의 원인이 되었다. 일당제(一黨制) 권위주의 정치체제인 중국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나타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정치적 불만이 청년세대 내에서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중국의 ‘탕핑족’(躺平族)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탕핑족은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노동시간, 열악한 주거환경, 암울한 현실에 지친 젊은이들이 직업, 소비, 결혼을 거부하는 사회 사조를 대변한다. 이미 중국의 인구 감소, 특히 노동인구의 감소가 시작되는 현실과 맞물려 노동 인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탕핑족의 증가는 중국의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요소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볼 수 있다. 우선, 대만과의 분쟁은 중국의 경제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킬 여지가 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중국-대만은 치열한 갈등 국면만큼이나 상호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실례로 아이폰을 생산하기 위한 부품의 70%가 미국-중국-대만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중국과 대만은 산업 구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반도체 수출을 통해 상호 의존도가 높다. 최근 양국 간 정치적 분쟁의 수준이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반도체 동맹과 같이 세계 공급망 시장을 재편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어 중국의 경제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고전 및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그룹의 반란 시도는 중국의 대만 문제 접근에 관하여 여러 시사점을 제기한다. 특히, 시진핑의 군 통제에 대한 우려와 대만 무력 개입이 가져올 후과 등에 대하여 고민을 해본다면 위험 구간을 지나는 중국의 행보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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