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본 글의 내용은 모든 국제정치/정치외교 대학원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으며, 학교마다 지원자격과 교육목표 및 방향, 커리큘럼 등은 모두 다르다. 부디 이 글은 그저 하나의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본인이 관심 있는 대학원에 대한 세부사항은 홈페이지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찾아볼 것을 권한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은 개인의 의견이며 당연하게도 내가 다닌 학교를 중심으로 서술될 것이다.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먼저 국제정치 또는 정치외교를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은 크게 전문대학원 과정의 하나인 국제대학원(GSIS)과 일반대학원 과정 안에 있는 정치외교학으로 나뉜다(서울대의 경우, 협동과정으로 만들어진 평화·통일학 전공(석사) 역시 국제정치학 관련 전공이라 할 수 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 두 과정의 차이를 단순히 영어강의 여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두 대학원 모두 국제정치를 공부할 수 있고, 비슷한 진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공통점을 갖기는 하나, 교육목표와 학업 방식 등에는 차이가 있기에 앞으로 서술될 내용을 유념해 대학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나는 일반대학원 과정에 속해있는 정치외교학 과정을 졸업했기 때문에 국제대학원 시스템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국제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떤 부분에서 일반대학원과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정치/외교학과에 대한 정리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A는 대학원 입학을 놓고 지원 마감까지 국제대학원이냐, 일반대학원이냐 고민을 하다 국제대학원을 선택한 경우다.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학문인지 실무 영역인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실 국제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지금도 커리어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시 학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논문을 읽으며 대학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국제대학원을 가서 공부를 하며, 공부가 내 길이 맞다면 유학이든, 국내든 일반대학원 정치학(Political Science)의 길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A의 결정은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기에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으로 국제대학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선택만 달랐을 뿐, 나의 생각 역시 A와 거의 일치했었다. 나도 엄밀하게 말해 학부 전공이 정치외교학이 아니었던지라 정치외교학을 잘 알지 못했고, 따라서 학자로 살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다. (실제로 사회과학적 사고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석사과정 동안 많이 힘들었고, 누군가의 연구를 배운다는 것을 공부로 착각해왔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A와 반대로 외교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석사 때 사회과학으로써 정치학을 공부하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박사까지 공부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고, 석사과정에서 학문의 길을 경험하면 내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때 박사과정이란 유학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기에 기회비용면에서도 일반대학원에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물론 국내의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 진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제대학원과 비교했을 때, 방법론 측면에서 연구 설계, 가설 검증을 위한 테크닉 등은 일반대학원 강의를 통해 보다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국제대학원 과정 중에라도 박사 진학에 관심이 있고, 졸업 이수 학점으로도 인정이 된다면 일반대학원 수업을 수강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반기문 세대잖아요”
A씨가 국제대학원을 결정하게 된 또 다른 동기에는 ‘취업’이 있었다.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국제대학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좀 더 실무에 맞는 부분들이 많아 국제학이 취업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원과 상관없이 졸업 후 원하는 직종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지만, 대개 실무 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국제대학원에, 학계로 가고 싶은 경우에는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때 실무라는 것은 컨설팅, 사기업, NGO, 국제기구 등과 공기업까지도 포함된다.
국제대학원의 홍보에서는 국제기구에 취업하는 졸업생의 사례가 강조되곤 한다. 재학생 중에는 ‘반기문 세대’를 자칭하며 국제기구 취업을 꿈꾸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다만 A는 실제 국제기구 취업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가 전하기로 IMF 출신의 모 강연자는 IMF에 GSIS 출신은 한 명도 없으며, World Bank 같은 경우도 단 8명을 채용하는 상황에도 지원자가 7만 명에 이른다면서 국제기구 취업의 어려움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 국제대학원 졸업생들은 주로 사기업에 가는 경우가 많고, 그 외 연구소나 언론계로도 많이 진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외교학과는 대부분 박사 진학을 선택한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선은 예상외로 학업 도중 자퇴를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내가 졸업한 학교를 기준으로 하면, 대략 한 기수의 30~40%는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는 것 같다). 이 경우 졸업까지 버티는 대신 빠르게 결정하고 방향을 전환했다고도 볼 수 있다. 몇몇은 휴학 후 준비를 해서 취직을 하거나 로스쿨 등으로 방향을 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대학원 내에서 이러한 소식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내 주위에선 졸업 후 기자가 되거나, 정부 기관, 사기업 등으로 간 친구들도 많이 있다.
퀴즈? 레포트? 소논문? 논자시? 졸업논문?
국제대학원과 일반대학원의 수업방식은 확연한 차이가 있고, 각각 실무와 학문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에 맞게 진행된다. 국제대학원의 강의가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라면, 일대원의 정치외교학 강의의 경우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끊임없이 논문을 읽고 새로운 주장을 할 수 있는 학자’를 키우는 데에 무게를 두는 식이다.
A가 말한 국제대학원의 커리큘럼은 다음과 같았다. 강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졸업을 위해선 총 39학점이 필요하고, 대체로 1~4학기에 4개/4개/4개/1개(논문연구 포함)의 강의를 수강한다(‘이래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선배들에게 들었다고 한다). 졸업 필수조건으로 제2외국어 자격증(중국어는 HSK 5급, 유럽어는 B2 수준 이상)을 취득해야 하고 논문제출자격시험(일명 ‘논자시’)을 통과해야 한다. 일반대학원과는 달리 논자시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그렇다. 일대원에선 흔하다).
수업마다 요구되는 것은 다르지만 ‘시험’은 거의 모든 수업에서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외에 레포트 과제와 퀴즈(리딩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가 있다. 중간/기말고사도 레포트식으로 제한 시간 내에 서술형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A의 경우, 지금껏 들었던 수업에서 소논문을 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일부 국제대학원은 비논문트랙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하고, 어떤 학교들은 졸업논문을 쓰지 않으려면 이수학점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한다(서울대 GSIS 경우엔 졸업논문 또한 필수이다). 그만큼 국제대학원은 실무를 위한 교육에 집중하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GSIS는 매년 매학기 상당한 인원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또 졸업하며, 그 규모가 일반대학원 인원의 수배를 뛰어넘는다. 교수들이 이들 모두의 논문을 일대원에서 하듯 꼼꼼하게 봐주기는 어려울 수 있다. A에 의하면, 국제대학원 교수들은 웬만하면 ‘학생들이 빨리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 실무에 뛰어드는 것’에 방점을 둔다고 했다. (그렇지만 당연히 국제대학원에서도 뛰어난 논문을 쓰는 분들이 많다! 거꾸로 일대원 논문이라고 더 수준이 높다는 보장도 없다. 오해하지 않길!)
반면 외교학은 대부분 한국어로 수업이 진행되지만 읽기는 보통 영어 논문을 읽는다. 졸업 이수학점은 국제대학원보다 적은 27학점이고, 논문학점을 6학점까지 포함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수강해야 하는 강의는 최소 7과목 정도이다. 하지만 논문심사를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빠른 졸업을 원한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도 적잖이, 사실 아주 많이 발생한다. 평가는 대부분 시험보다는 소논문(또는 ‘페이퍼’) 제출로 이뤄진다. 소논문은 15~20장 정도 분량으로 저널 아티클과 비슷하게 쓰며, 이렇게 써낸 소논문들이 자신의 졸업논문 주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대개 ‘로드가 많다’ 하는 식으로 표현되는, 수업마다 읽어야 할 분량이 눈에 띄게 많은 수업도 종종 있다. 물론 평범한 수업도 없지 않지만, 몇몇 수업은 읽다 지쳐 울고 싶어질 정도로 리딩이 많다. (해당 선생님은 syllabus의 리딩 리스트를 학생들이 다 읽지 못하리란 걸 이미 알고 계시는 듯하고, 전부 읽어올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 않으시는 듯하다. 그럼 대체 왜…?) 이렇게 많은 리딩을 투척하는 경우, 교수님의 생각은 대충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라든가, ‘이 많은 리딩 중 뭐라도 너에게 가서 꽂히면 좋겠구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일대원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필요한 논문을 충분히 읽고, 비판적 사고와 문제의식을 계속해서 쌓아나가는 훈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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