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수학계획서(SOP) 쓰기

자기소개서/수학계획서(SOP)는 그 어떤 전공이든 대학원 지원의 필수 서류에 해당한다. 이름 그대로 자기를 소개하고, 무엇을 공부(연구)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교수님들이 ‘얘 좀 쓸만하겠는데?’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이 자소서/SOP는 각 학교마다 주어진 포맷이 존재하며, 각 학교 입학처의 자료실 등에서 확인해보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원서 접수 기간 ‘한참 이전’부터 해당 양식을 받아두고, 시간을 충분히 두면서 작성하고→검토하고→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학교에 따라 항목 자체가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기도, 또는 굵직한 질문들로만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예컨대 내가 지원했던 두 개 학교는 (기본정보를 쓰는 칸을 제외하고) 주요 항목이 각기 4개와 10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막상 다 쓰고 나면 그 내용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자소서/SOP를 쓰는 과정은 자신이 지나온 자취를 정리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아주 치열하고 또 치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된다. 대학원을 한 곳만 지원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이 아니라면, 여러 학교의 여러 포맷으로 자소서/SOP를 작성해보면서 그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질문이 4개가 됐든, 10개가 됐든 변치 않고 포함되는 핵심 중의 핵심은 ‘진학 동기’, ‘연구 분야와 연구 계획’, ‘장래(졸업 후) 계획’을 꼽을 수 있다. 얼핏 보면 너무 당연하고 간결해보여서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동시에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기도 할 것이다.

이 자소서/SOP 작성의 첫 단계로 가장 무난하게(?) 시도할 것은 바로 성적표 출력이다. 어차피 성적증명서는 모든 학교의 필수 제출서류이다. 학부 포털에 들어가 성적표를 뽑아 보면, 지나간 8(+α)학기의 기억고통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지나갈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어떤 수업이 지금의 이 —대학원 진학이라는 몹쓸(!)—결심을 만들었는지, 짜릿함이든 설렘이든 뿌듯함이든 궁금함이든 뭐든 썰로 풀만한 에피소드는 없는지, 어느 수업에서 쓴 페이퍼가 나에게 A+을 안겨줬는지, 그때 그 재밌었던 대외활동은 몇 학기 때였는지, 나의 대학생활을 성적표에서부터 출발해 정리해보자. 어떤 수업을 들었나, 어느 수업의 과제가 그렇게나 흥미로웠었는가, 무엇이 아쉬워서 혹은 무엇을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머릿 속에서 정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쓸 말이 정리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에서는 답변 항목이 10개가 넘어갔던 학교의 자소서 항목을 어떻게 썼었는지를 하나씩 짚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이 방법은 나의 경험과 나의 대학생활, 아주 사소하게는 나의 글쓰기 습관까지도 잔뜩 묻어나는 것이므로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어주시길 당부드린다.


  • 경력(대학생활 또는 직장활동 상황)

대학생활과 직장활동이 어떻게 ‘경력’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드는 이름이지만, 바꿔 말하면 대입 이래 모든 경험을 다 써도 괜찮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소제목+문단 2~3개] 구성으로 두 꼭지를 썼고, 그 뒤에는 본문에 언급한 경력을 포함한 대외활동+봉사+인턴+알바 경력 등을 표로 정리해 넣었다. 소제목을 쓴 건, 아무래도 여러 지원서를 읽어야 하는 선생님들이 인상적인 소제목 없이 구구절절한 줄글 전부를 흥미롭게 읽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굳이 표를 넣은 것은, 재학 중에 1년씩 두 번, 총 2년을 휴학한 탓에 성적표에 학기가 듬성듬성(?) 한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공부랑은 좀 안 어울리는 학생 아닌가?’ 하는 인상을 선생님들께 줘버린 듯했다. 그대로 면접 질문이 되어버렸다(…)

첫 꼭지는 학부 시절 관심 있게 들었던 수업+복전+대외활동+봉사활동+연구인턴+아카데미 수강 등을 간결하게 압축해서 쓰면서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썼다. 두 번째 꼭지는 인턴과 알바 경험에 대해 썼는데, 솔직히 밝히면 손쉬운 분량 채우기(ㅎ)를 위해 인턴/알바 이력서에 늘 쓰던 문단을 재활용해서 국제정치와 연결짓는 식으로 다듬기만 했다.

이때 쓰는 내용은 그냥 경력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다음 문항인 지원동기와 장래계획으로 이어질 내용의 밑밥, 썰을 풀어주는 단계가 되어주는 것이 좋다. 대학원 지원과 관련 없는 경력 등을 장황하게 풀어놓는 것은 첫 문항부터 오히려 산만함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쓸 다른 항목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최대한 잘 눌러 담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다. 일전에 나는 모 기관에서 일할 때, 스펙이 정말 많고 너무도 화려했던 한 지원자의 이력서를 놓고 인사 담당자가 “얘는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애야.”라고 단언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지원동기 및 장래계획

[소제목+문단 2개] 구성으로 지원동기와 장래계획을 각각 한 꼭지씩 썼다. 지원동기 부분에서는 위의 경력 항목에서 쓴 내용과 연결지으면서, “이러이러한 활동과 공부를 해왔는데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고, 요런 부분은 조금 아쉬웠고, 저런 부분은 더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 이렇게 대학원에 지원하게 되었다”하는 내용을 썼다. 장래계획 파트에서는 ‘석사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학자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갖은 양념을 치고 오물조물 부풀려서 두 문단으로 만드는 데에 간신히 성공했다.

  • 성격의 장단점 및 특기

특별히 대학원에 맞는 특정한 성격을 더 선호한다거나, 어떤 단점을 가졌다고 해서 입학 허가를 재고할만한 일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건지, 읽기는 하시는 건지 좀 의문이 드는 항목이었어서… 그냥 알바/인턴 이력서에서 복붙하고 다듬었다. 역시나 [소제목+문단 1] 구성으로 세 꼭지 정도를 썼다. 평소에 이력서를 좀 써 본 경우엔 부담 없이 쓰던 대로 쓰면 될 것이고, 재학 중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어서 도무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은 취준생들의 자소서 작성 노하우 등을 참고해봐도 좋을 듯하다.

  • 상벌사항

대학 다니면서 상 받을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싶어서 좀 울고 싶어졌지만, 하는 수 없이 그야말로 있는 상 없는 상을 다 끌어모아서 썼다. 정부 부처 기자단 위촉장과 교육과정 이수증, 수료증 및 아카데미 수료증까지도 박박 긁어서 썼고, 줄글로 풀어쓸 것도 없어서 그냥 “○ 날짜, 이름, 수여기관”으로 항목화해서 기재했다. 하지만 그다지 어필이 되진 않았을 것이고, 대학원 입시에서 제일 임팩트가 강한 상은 우수논문상일 것이라고 추정(그치만 나는 못 받아봐서…)한다.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빈칸으로 두자.

  • 기타(특기사항)

위에서 뭐가 없으면 없는대로 빈칸으로 두자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도… 지원서를 쓸 때에는 나 역시 빈칸이 많은 것이 불안(?)해서 아무거나 썼었다. 어떤 방면의 아무거를 쓸까 고심하다가 결국 한국사와 한국어능력시험 자격을 기재했었다. 그렇지만 큰 의미도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면 마찬가지로 빈칸으로 두자.

  • 석사박사 진학시 희망 연구분야 및 연구계획

진짜 중요한 건 여기다. 지원동기에 기재한 것과 연결지어서, 어떤 주제들에 관심이 있는지, 뭘 공부하자고 대학원에 들어가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 중요하다. 관심 분야 몇 가지만 키워드로 나열했다가는 분량이 너무 안 나올 수 있으니, 언제고 한번 페이퍼로 써볼 만한 주제들을 여럿 구상해서 포함해보는 것도 좋다. 혹은 지금 현재 국제정치에 관해 품고 있는 질문들, 그걸 공부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하는 본인의 구상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이 항목에서 쓸 게 있으려면, 어느 정도 꾸준한 관심과 적극적인 서치, 일종의 문제의식도 필요할 것이다. 단, 여기에 쓴 거 갖고 졸업논문 쓰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니 너무 까다롭게 혹은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 학부, 대학원 이수 전공과목 중 관심과목

앞서 서류 작성의 시작점으로 꼽았던 ‘성적표’와의 연계가 가장 도드라지는 곳이며, 면접 준비에서도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이 부분은 소제목 없이 4개 정도의 문단으로 구성했었는데, 두 개의 수업을 언급하면서 ‘뫄뫄 수업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무엇을 배웠고, 이 강의를 통해 내가 이러저러한 시각/태도/호기심/관심을 갖게 되었고~ 솨솨 수업에서는 저러이러한 것을 배웠고, 특히 요런 내용의 페이퍼를 썼었는데 이 과제가 재미있었던 것이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는 식으로 내용을 구성했었다. (실제로 솨솨 수업은 내가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주 역설적이게도 학점은 박살 난 경우였어서 이 또한 면접에서 추가 질문을 초래했다. ‘그렇게 재밌었다며 성적은 왜 이 모양인가?’)

참고로 나는 학부 전공이 대학원 전공과 일치하지는 않았으므로, 학부 때에 타과/연계전공으로 들었던 국제정치 관련 수업을 언급해야 했다. 조금 뜬금 없을 수 있지만 정외 관련 전공과목의 경우, 교수님들이 타학교 출신 학생들에게도 ‘이 수업은 누구한테 들었었냐?’를 물으실 수 있다. (어차피 선생님들 기준에는 다들 같은 바닥(?) 동료/선후배들이므로…) 면접 가기 전에 담당 교수님 이름을 꼭 기억해두고 가자.

  • 석사박사 이후의 계획(박사진학, 취업, 유학 등)

앞서 ‘장래계획’ 항목에서 ‘석사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학자가 되고 싶다’를 뻥뻥 튀겨서 두 문단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썼는데, 다 쓰고 보니 여기 복병이 또 있었다. 완전히 같은 내용을 쓸 수는 없어서 장래계획 항목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저러한 주제/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동 항목에서의 답변은 아예 ‘박사과정에 진학할 계획’이고, ‘해외 유학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쓰는 것을 선택했다.

이 부분에서 조금 긴 사족을 덧붙이자면, 일전에 국제대학원과 일반대학원의 교육목표를 비교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대원 입시에서는 졸업 후 취업을 택하기보다는 학계에 남아있고자 하는 학생들을 더 선호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은은하게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 교수 될 생각으로 대학원을 왔다가도 생각이 바뀌면 취업하러 나갈 수 있는 일이고, 보다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석사만 빨리 하고 취업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얘가 굳이 대학원에 올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여지가 크며, 솔직하게는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취업을 하고 싶다면 굳이 이 고통을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전혀 없다. 인문사회계열 여러분의 몸값은 (석사도 박사도 아닌) 학사일 때 그 포텐이 가장 높을 것이며, 생명끈을 줄여 가방끈을 늘린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여러분, 기왕 고생할 거라면 돈 받고 하는 고생을 하세요. 돈 내고 하는 고생 말고… 명심해 여러분…)

  • 비고(기타)

위에 있던 기타(특기사항)와 뭐가 다른지조차 알 수 없다. 빈칸으로 뒀다.

  • 연구실적목록(논문, 보고서, 연구참여 등)

연구인턴으로 일했을 때 참여한 보고서를 하나 기재했다. 그러나 학부 때부터 이미 논문공모나 연구소 인턴 등을 경험한 이들을 제외하고, 박사 지원도 아닌 석사 지원 단계에서 연구실적이 없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난 이런 거 없어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은 전혀 갖지 않아도 좋다. 이건 지원자격 요건이 아니다. 실적이 있다면 뿌듯한 마음으로 쓰면 된다.


이렇게 자소서/SOP 작성이 끝이 났다. 다 읽고 보니 생각보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시시할 수도, 혹은 생각보다 너무 TMI 대잔치라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뛰어나지도, 탁월하지도 않은 데다가 학부 전공도 학교도 모두 달랐던 내 자소서는 아마 여러분들이 앞으로 쓸 자소서보다 부족한 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들은 금과옥조도 비단 주머니도 말고, 엄빠 잔소리마냥 한 귀로 듣고 필요한 것만 쏙쏙 고른 뒤에 한 귀로 다시 흘려보내듯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3개 응답

  1.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책도 SOP구상할때 종종 보는 편인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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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 책이 있었군요.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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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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