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시작했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下)

DLEE & 등대지기

미국 박사 첫 학기를 마치며

DLEE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안고 시작한 미국 박사과정 여정의 첫 학기가 끝났다. 시작부터 걱정이 많이 앞섰던 이유는 가까운 선배들이나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접했던 박사 생존기를 듣고 내가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던 부분이 컸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하루에 잠을 2-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든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리딩 내용과 더불어 영어 공포증으로 수업시간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다든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펀딩이 중단될 뻔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미친 미국 물가에 비해 너무나 작고 귀여운 박사 월급으로 인한 생활고 등이 박사과정생들이 흔히 겪는 문제들인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무시무시한 박사 유학 무용담들로 인해 겁을 먹었던 것에 비해 큰 탈 없이 첫 학기를 마치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물론 학업이나 생활에서의 적응이 쉬웠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듣는 이야기들로 인해 너무 쉽게 나의 한계를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긍정적인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미국 박사과정 stipend로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합격 레터에 적혀있던 펀딩 액수가 이게 과연 풀(full) 펀딩인가 싶을 정도로 적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벌던 돈에 비해 적은 돈으로 물가가 훨씬 높은 나라에서 지내야 하다보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알뜰하게 생활을 해보니 사는데 전혀 지장 없었다. 가끔은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여가 생활, 쇼핑 등 소소한 행복으로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알뜰”의 기준은 1) 혼자 집을 렌트하지 않고 룸메이트를 구해서 월세를 나눠낸다. 아무래도 월급에서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하는 부분이 월세일텐데 룸메를 구해 비용을 절감하게 되면 그만큼 많이 아낄 수 있다. 2) 학기 중 평일 외식을 많이 줄이고 식재료를 사서 직접 해먹는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식재료 값이 싸기 때문에 조금만 부지런히 요리하면 건강과 절약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절약하면서 살다 보면 크게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은 딱 맞는 월급으로 그냥 저냥 가끔씩 소소한 행복 정도는 누리면서 살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지역마다 상이할 수 있으나 다른 주에 사는 친구들을 봐도 비슷한 것 같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유지가 가능할까?

석사 때도 저질 체력과 유리 멘탈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고 학위 논문을 쓰느라 적지 않게 고생을 했다. 이런 내가 어떻게 박사과정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박사과정은 석사 때 공부하던 것의 연속선이라고 볼 수 있다. 공부하는 방법이나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공부를 업으로 삼기로 작정했기에 스스로가 느끼는 무게감, 그리고 박사과정생에 대한 교수님들의 기대치 등이 달라진 것 같다. (미국 교수님들은 박사과정생을 학생보다는 수련 중인 동료로 여기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부담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멘탈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오히려 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보다 할 일이 많을 때 충분히 쉬는 방법으로 멘탈 관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수업에 기여하지 못했다든가, 계획한 만큼 공부를 끝내지 못하면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다. 평소 의식적으로 일정 양만큼 수면을 취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혼자 속상한 감정이 몰려들면 눈물, 콧물 컨트롤이 안된다. 만약 평소에 엄청난 양의 과제를 소화하면서 휴식조차 없이 자기 자신을 방치했다면 아마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쉬어야 한다. “work life balance” 에서 균형이 깨져 어느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미친듯이 “work” 에만 집중해서도 안되고, 게으르게 놀고, 쉬고, 먹기만 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필자도 아직 양자 간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단계이다. 언젠가는 건강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미국 – 동부 – 대학

등대지기

미국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기간에 박사과정을 준비했고, 운이 좋게 입시 결과를 받아 들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결과가 중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결과에 따라서 석사과정을 졸업하느냐 마느냐, 즉 졸업논문을 쓰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 학교에서 오퍼를 줬고—여전히 왜 줬는지는 의문이지만—현재 박사과정의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다.

아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본 글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과 인상, 평가를 적어 놓은 주관적인 글이다. 때문에 절대로 일반화할 수 없으며 하나의 썰(?)로 생각하고 읽어 주기를 바란다.

학교 생활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물론 백퍼센트 만족은 아니지만) 학교 자체가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교통이 나름 편리하다. 지하철도 있고 공항도 있고 버스도 다닌다. 그리고 박물관이랑 볼거리들도 있어서 여가생활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 학교와 학과 프로그램 특성상 공부하는 주제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좋은 점은 학문 융합적인 접근을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이에 기반한 교수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학적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담당 교수님께 공학적 지식이 1도 없는 정치학도로서의 걱정을 토로했더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수업시간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꼭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이처럼 다른 과의 수업을 듣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타과 교수님들도 친절하게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 학과를 제외한 정책대학원, 경영대학, 컴퓨터공학, Human-Computer Interaction 과정 교수님들 및 박사과정생들과 연구 및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은 점은 교수진과 학풍(?)인데, 학과 건물 어디서나 AI나 반도체 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이 점이 석사과정 때와는 많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외교학 석사과정 때는 지도교수님을 제외한 다른 교수님들과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해본 적이 아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국제관계학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소속 교수님 누구를 붙잡고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도 기술과 국제정치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는지 등과 같은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이 정치학에 끼치는 영향과 그 과정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을 기르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이를 깊게 연구하는 학풍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변에 같이 공부하는 박사과정생이나 교수직 임용후보자들의 면면을 봤을 때 이러한 학풍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개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학기에 운이 좋게 국제안보와 국제정치경제 교수 임용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과정에서 살펴본 결과 지원자들이 연구하는 주제는 모두 학교의 결과 유사했으며 이는 근처 학과인 Public Policy 임용 과정에서도 유사했다: Machine Learning and Nuclear Deterrence, Space and China, Cryptocurrency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Economic Sanctions 등) 그리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Chat GPT-3이 공개되었을 당시 한 교수님께서는 GPT를 사용했다는 사실만 제대로 표기한다면 이를 사용해서 글을 써도 괜찮다고 하실 정도였다.

만약에 입학 전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답한다면—물론 얼마 안되기는 했지만;;, 나는 오히려 국제정치학 고전들을 강독할 것 같다. 박사과정 시작 전에도 석사 학위논문을 쓰느라 최신 연구들만 주구장창 읽었었는데, 오히려 로버트 코헤인, 더글라스 어윈, 알버트 허쉬만, 토마스 쉘링 등 50-70년대 학자들의 국제정치학 고전을 조금 더 심도 깊게 읽을 것 같다. 가끔 연구 주제에 함몰돼서 정치학이 가지고 있는 뿌리나 기반이 개인적으로 약하다는 생각들이 들 때가 있는데, 학기를 시작하고 나니 도저히 이를 제대로 독파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읽어야 되는 논문과 책들은 계속 출간되고, 이를 따라갈 필요가 있어서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국제정치학 내공을 쌓아놓을 것 같다. (물론 쉬는 것도 잘 쉬어야 한다!!!)

생활적인 면에서는 미국을 한 1-2주 정도 여행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이 좋게도 교환학생 1년, 근무 1년 도합 약 2년의 미국 경험 덕분에 박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크게 힘들거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미국에 처음 오게 된다면 아무래도 환경과 문화가 다르다 보니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성격이 조금 예민하거나 환경에 민감한 분들이라면 더더욱 마음의 준비를 굳세게 하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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