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유학 2년 차: 여전히 처음

김다슬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으로 비교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2년 차 김다슬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닿게 되어 이 공간을 빌려 하고 있는 연구, 학교 및 일상생활 등 박사 과정 유학 전반에 대한 지극히 그리고 다분히 개인적인—정치학, 비교정치학 전반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학교도, 지역도 어느 것 하나 일반화하여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소고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일단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한국에서 졸업한 후에 유학을 준비하여 나이 서른에 첫 미국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것이 저에게 너무도 새로웠기에, 앞으로 서술할 내용들에는 처음이 주는 낯섦, 당혹감, 고군분투 등이 많이 담겨 있을 듯합니다.


언어의 장벽

현재 4번째 학기의 절반 정도가 지났으니, 몇 달만 있으면 미국에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첫 학기, 첫 해의 경험은 너무도 강렬하여 엊그제 일처럼 생각이 납니다. 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언어 장벽입니다. 분명 토플 리스닝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실전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토론에 참여는커녕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나 이렇게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풀펀딩 받고 유학 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에 스스로에게는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작아지고, 영어로 대화하는 자리는 계속해서 더 피하게 되고, 교류와 생각의 확장 없이 혼자 하는 리딩에 파묻혀서 보내니 좌절감과 패배감만 쌓여갔습니다. 짧지 않은 학생 인생 처음으로 한 학기를 침묵하며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첫 가을 학기를 마치고, 서른에 유학길에 올라서 처음으로 영어권에서 생활하는 것이니 힘들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변화를 시도했었습니다. 그때 가장 원대한 목표라고 세워 두었던 것이 쫓겨나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 다 했죠. 그래도 녹록지 않았던 일 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조금은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언어 장벽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더라고요. 제가 겪은 어려움이 누군가의 어려움을 덜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과정을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될 때도 있음을 상기하며 적어 보았습니다.

학교생활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의 학교생활을 1) 수업 준비 및 참여 2) TA/RA 3) 연구 4) 세미나 등 행사 참석 5) 장학금 신청 6) 네트워킹 정도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간략한 소개와 비루한 조언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1) 수업. 박사부터 비교정치로 전공을 틀어서 학과 내의 필수 리딩이 무엇인지 배우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기초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뼈대 정도는 수업들을 통해 기초적인 뼈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수업 관련하여 가장 아쉬운 점은 제가 딱 연구하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수업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야가 비슷한 교수와 Independent study를 하였으나 갈증이 잘 해소되진 않았습니다. 다른 옵션으로 타 학교 같은 과 혹은 교내 타과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통학도 쉽지 않았고, 비교정치 기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학과 내부에 있는 수업만 주로 들었는데 아쉽기도 합니다. 방법론 수업을 4개 정도 들었지만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게 되는 것 같아서 방법론은 주제를 어느 정도 잡았을 때 듣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TA/RA. 저희 학교는 2, 3학년은 TA, 4학년은 RA를 하는 게 보통이라 저는 지금 TA를 두 학기째 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에도 TA는 시험 감독으로만 보았고 석사 때 TA를 하면서 한 일들도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채점 정도여서, 직접 섹션을 이끄는 것과 섹션 준비, 채점, 수업 참여 등에 시간을 쓰는 게 꽤나 부담스러웠지만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교수마다 강의 방식도 TA에 대한 기대치도 다르기에 선배와 동기들에게 물어서 그나마 잘 맞는 교수의 TA가 되는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3) 연구. 독자적인 연구자가 되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수업 4개를 들으며 개인 연구도 함께 진행하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개인 연구에 쓰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5년 안에 끝내고 졸업하려면 사실상 4학년 때에 논문 작업을 얼추 끝내 놓아야 하기에, 2학년까지는 주제를 잡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조급함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학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호트들과의 세미나에서 조금씩 주제를 발전시키려는 시도만 하고 있습니다.

4) 세미나, 학회 등 행사 참석. 사실 코스웍을 핑계로 학과에서 열리는 세미나들에 첫 학기 이후로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은데, 최신 연구 동향 등을 파악하기에 매우 좋은 기회들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북 토크와 잡톡[1]도 많고, 그 외에 학과에서 마련하는 교수들과의 자리 등이 종종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꽤나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학회나 세미나에 적극 참여하여 견문을 넓힐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있습니다. 방법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게 많습니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장점 중의 하나가 이런 기회가 많다는 것일 텐데, 좀 더 활용해 보아야겠습니다.

5) 장학금 신청. 학과에서 지원해 주는 생활비만으로는 생활이 넉넉지 않아서, 기회가 나면 교내/교외 장학금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교내 시험 감독이나 멘토 등에도 지원하면서 용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규모도 한국보다 훨씬 크고 기회도 많아서, 좋은 연구만 손에 쥐고 있다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6) 네트워킹. 저는 아직 커미티 멤버도 정하지 않은 상태라 할 말이 없지만, 수업이나 세미나 등에서 만난 교수들, 특히 주제가 비슷한 교수들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1] 교수 채용 과정의 일부로, 후보들이 와서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본인의 핵심 연구 발표도 하고 대학원생과 대화하는 시간도 가지는데 요즘 졸업하는 사람들 혹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교수들의 최신 연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발표하는지, 어떤 코멘트를 듣는지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공부와 연구

(‘연구’라는 말을 붙이기에 깊이가 얕아 민망하긴 하지만 민망함을 덜어낼 만큼 공부하는 것이 저의 목표기에 차치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연구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독자적인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공부와 연구 사이의 균형은 쉽지 않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코스웍과 졸업논문 사이의 균형, 이후에는 습득과 생산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현재 코스웍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아직 졸업 논문 주제를 명확히 찾지 못했습니다. 빈곤의 정치학을 해보겠노라고 포부를 품고 들어왔지만 첫해는 생존이 목표였기에 그저 주어진 리딩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면서, 생각보다 주어진 5년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연구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하려고 하였으나 난항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코스웍 마지막 학기인 만큼 수업에서도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주제와 상관없는 수업들을 듣고 있자니 리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그렇다고 졸업 논문 주제를 본격적으로 서칭하기에는 따라가는 것도 여유롭지 않은 그런 상황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ODA 관련 연구원으로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에서 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는 것이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다고 느껴서 유학을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생각해 보니 관심 주제가 참 많이 변화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조 효과성에서 시작했다가 “위계 관계를 전제하지 않은 기능적 미분화의 몰역사성을 벗어버리고, 탈식민적 전략을 취하며, 탈근대적으로 이분법을 벗어나서, 실증주의와 성찰주의를 아우르는 IR은 가능한 것인가?” 같은 굉장히 IR스러운 질문을 던질 때도 있었습니다. 졸업 논문을 쓸 때쯤에는 “권위주의 국가 내의 제도적 차이가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로 연구 질문이 변하게 되어 종속 변수를 그림자 경제로 삼아 졸업 논문을 썼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의 제도적 차이와 그 영향”이라는 주제를 핵심으로 하여 박사 과정에 시작했는데, 독립변수도 종속변수도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이 없이 떠돌고 있는 상태가 지금입니다. 아직 그림자 경제에도 계속 관심이 있고, 복지 정책, 빈곤, 원조, 최근에는 urban slum에도 관심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구체화시킬 때가 오고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SOP를 쓸 때에는 학교 다니면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내가 전문가가 될 분야를 확정해야 된다는 생각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자문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정말 궁금한 게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하고 싶었는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지, 학계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해 고민하며 방황 중에 있습니다.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바로 현실적인 문제라서, 정치학계라는 시장에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의미가 없는 것이니, 후에 잡’마켓’에 나갔을 때 어떤 주제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할지도 내가 방법론적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등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에 남을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다른 곳에 가고 싶은지, 내가 교수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다른 게 하고 싶은 건지, 괜스레 진로 고민까지 새로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먹고사는 일들

첫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가지고 있던 보드게임들을 모두 처분했는데 그게 참 아쉬웠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저는 공부하러 미국의 대학이 아니라 절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수영복도 보드게임도 새로 샀고, 틈틈이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왕 와있는 김에 학기 전후와 봄방학 등을 이용해서 미국 내 여행도 다니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늘 달려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펀딩만으로는 여유롭기 어렵습니다. 제가 받는 stipend는 세후 학기중 월 $3,300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45%가 렌트비로 나가고, 여기에 핸드폰 요금, 인터넷 사용비 등 각종 고정비가 빠지고 나면, 한 달에 한두 번 외식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작고 소중한 금액만 남게 됩니다. 고정비를 줄여야 생활에 여유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배우자와 함께 와서 셰어하우스는 옵션에서 제외했습니다. 학교에서 풀펀딩을 주어도 대부분 최저생계비를 주는 것이기에, 별도의 일을 하지 않으면, 특히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stipend가 나오지 않는 여름을 미국 내에서 보내려면, RA 자리 등을 찾는 대비가 필요합니다.

공부가 무엇이라고, 압박이 커지면 먹고사는 이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건강히 먹고, 운동하고, 잘 자고, 잘 노는 게 삶을 위해, 그리고 학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것을 알지만 마음을 잘 지키지 않으면 쉽게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해온 것, 하고 있는 것, 하지 못한 것, 해야 할 것 등에 대해 서술해 보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더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입학에서부터 졸업까지, 그리고 졸업 이후까지 정말 특출난 분들이나, 돌아갈 곳이 있는 보장된 분들이 아니라면 박사 과정은 불확실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것 같지도 않고, 가끔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배움에 즐거움을 느끼며, 연구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그저 경로 의존성에 따라 시작한 일이라면—작은 풍파에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적성에도 맞고 공부가 좋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계속 무너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유학 가기 전 지도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자주 생각이 납니다. 박사 과정은 계속해서 넘을 수 없을 것과 같은 벽을 마주하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참말로 그렇습니다. 사실 박사 과정 이전에, 준비하는 것부터, 혹은 석사 과정을 졸업하는 것부터가 벽을 뛰어넘으려는 도전의 시작인 듯합니다. 2년이 다 되어 가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의 벽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코스웍은 끝이 보이지만 앞으로도 주제를 잡고, 커미티도 구성하고, 시험도 보고, 졸업 후 취업, 그리고 이를 일상 생활과 병행하는 것 등 아직도 많은 처음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사 과정의 처음은 이미 지났지만, 여전히 늘 처음을 마주합니다. 마음을 지키며 또 새로이 마주하는 벽을 밀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개 응답

  1. 안녕하세요 새음학교 9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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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임다빛 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도제배움이라는 소명찾기 공부를 합니다. 미국에 계신 유미현 이모를 통해서 선생님께서 저의 멘토가 되어 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직 Gmail을 받지 못해서 소통이 어려운데 혹시 Gmail 주소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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