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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의 퀴어 집회를 둘러싼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구지방경찰 간의 충돌은 퀴어 문화제가 개최되는 시기마다 발생하는 여러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해당 사안은 시위 자체가 아닌 도로 통제에 관한 행정 부처와 경찰 간의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나, 여기에는 그 사안의 민감성과 홍준표 시장의 개인적 혹은 정치적 견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논란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었으며, 한국의 경우 오히려 비교적 늦은 시기에 시작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논쟁을 전지구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러한 현상의 확산 원인과 경로, 그리고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 정도가 국가마다 차이를 보이는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일견 사회학 차원의 연구주제로 보일 수 있으나, 개인의 권리 보장을 둘러싼 집단 간의 이해관계, 이를 조정하기 위한 정치적 절차, 그리고 권리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입법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정치학적 접근이 필수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When States Come Out: Europe’s Sexual Minorities and the Politics of Visibility의 저자 Phillip M. Ayoub는 본 저서를 비롯해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 혹은 국가 간 성소수자 관련 국제인권규범의 수용 정도 등을 분석하는 다양한 연구들을 활발하게 진행해오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 이슈를 국제규범의 확산 및 수용 차원에서 국제 NGO를 중심으로 하는 초국가적 행위자의 역할과 이를 둘러싼 국내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주목하여 다룬다.
본 저서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에 기반한 것으로서, 그가 강조하는 초국가적 행위자의 역할과 함께 성소수자 현안의 국내 가시성(visibility), 국내 정치적 기회 등의 주요 변수를 통해 EU 회원국들의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관한 규범 수용 메커니즘 및 국가 간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EU 회원국의 정치 엘리트들과 성소수자 권리 보장 관련 활동가들에 대한 인터뷰와 폴란드의 규범 수용에 관한 사례 연구, 그리고 EU 회원국의 성소수자 권리 보장 수준에 대한 large-N 연구 등 다양한 연구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 여부 및 그 정도는 성소수자 현안의 가시성에 따라 달라진다. 그가 강조하는 가시성은 대중이나 정부가 새로운 규범의 수용을 요구하는 행위자들의 행위와 그들의 요구(이념)를 보거나 마주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즉, 가시성이 높다는 것은 대중과 정부가 규범 수용 요구자들의 활동이나 주장에 익숙하다는 것(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을 의미한다. 저자는 규범의 가시성이 높을수록 규범의 수용을 요구하는 행위자들(성소수자) 간의 연대가 용이해지고, 이를 통해 대중과 사회의 지지를 동원하기 쉬워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의 규범 이행과 국내 수용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동시에, 국내 행위자들과 EU 혹은 국제 NGO 등의 연결이 활발할수록 국제 규범의 국내 전파가 쉬워지고 따라서 국내 가시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아울러, EU 가입 혹은 개별 국가의 NGO에 대한 규제 정도 등과 같은 정치적 기회 역시 규범의 가시성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본 저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규범에 대한 위협 인식 정도이다. 저자는 본 저서에서 위협을 외부 규범에 의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 핵심 가치의 손상 혹은 약화 등의 위험이라고 규정한다(p. 40). 이러한 위협 인식은 외부 규범이 국내로 수용되는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구조를 형성하는 한 요인이 된다. 나아가, 위협 인식은 사회 혹은 국가 수준의 변수인 동시에 성소수자 규범에 대한 개인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존 핵심 가치의 대표적 예시로 종교와 민족주의를 언급한다. 성소수자 규범은 그 특성 상, 기독교(개신교, 가톨릭, 정교회를 모두 포함하는)의 교리와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종교적 가치가 국가 정체성과 밀접하게 결합된 개인 혹은 사회의 경우,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이라는 국제규범이 기존의 핵심 가치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위협의 정도는 더욱 크게 인식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저자는 한 국가 내에서 규범의 가시성이 높을수록 규범의 수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규범의 가시성은 초국가적 행위자와 국내 규범 수용 요구자들의 연계 정도, 이들 초국가적 행위자와 국내 행위자가 활동하기 위한 정치적 구조, 그리고 기존 핵심 가치에 대한 위협의 정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 추가로 흥미로운 부분은 규범 수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내의 반발(backlash)과 이로 인한 논쟁(contestation)이 단기적으로는 규범 수용을 어렵게 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규범의 가시성을 증가시켜 규범 수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본 저서는 전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는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에 관한 사회적 갈등과 이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해당 문제를 도덕적 당위성의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닌 정치학적 시각에서 다양한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는 점이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가 제시한 분석틀은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이민자나 인종 혹은 종교 차원의 소수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정치적 구조의 경우, 해당 개념 자체가 시민사회에 대한 규제 정도, 선거 제도, 정당 체제 등 그 자체로 여러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의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선거 제도나 정당 체제, 혹은 입법 절차와 같은 특정 제도에 따른 규범 수용의 결과와 규범 수용에 소요되는 기간 등을 분석하는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그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Phillip M. Ayoub. 2016. When States Come Out: Europe’s Sexual Minorities and the Politics of Visibi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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